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외치던 것에서 기인한 날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고난주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왜 고난의 길을 가셔야 했는지 묵상해봐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또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를 통한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와 여러분이 고난주간을 감사로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말라기의 주요 내용은 심판과 회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과 그 분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과 제사를 멸시하고 그 분의 이름을 멸시했다는 것은 죄입니다. 그래서 심판받고 저주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변하시는 사랑으로, 언약을 성취하시는 신실하심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말라기의 주요내용입니다. 말라기의 배경은 느헤미야의 2번째 통치 때로 추정이 됩니다. ,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건축된 이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귀환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기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도 최선을 다해 잘 감당하면서 복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자신들이 기대했던 복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생활의 어려움은 날로 더해갑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심하게 됩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열심히 주의 일을 하고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단지 주님께 복 받기 원하는 것만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섬김과 예배의 대상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복을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래 기다려도 주어지지 않자 신앙생활의 형식화가 일어납니다. 이는 첫째로, 성전과 제사에 대한 경멸과 무관심으로 드러났습니다. 둘째로, 십일조와 서원제물을 드림에 있어서 형식과 위선만 남았습니다. 셋째로, 이방인들과 잡혼을 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위 영적 권태기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하나님과 멀어져 갔습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교회에 나오기 싫고, 지루하고, 예배와 헌신도 다 무너지며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의무만이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식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들이 왜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데 은혜를 잊어서 신앙의 형식화가 일어났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범한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죄가 깨달아져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회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회복은 죄를 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경고하시고,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반문합니다. , 이들은 하나님께 대해 불평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그만큼 했는데 왜 우리에게 보상을 안주시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은혜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주를 위해 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면서 주어지지 않자 영적 나태와 무감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 에서와 야곱 모두 동일한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은 긍휼로 대하시고 에서는 공의로 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에서는 자신의 죄에 대해 형벌을 받는 것이 당연했고,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은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분과 동행하는 것이 은혜임을 알고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대듭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6-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자신의 이름을 멸시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신앙고백 자체도 형식적이고 진실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더러운 떡을 제단에 드린 것입니다. 떡은 헌물 전체를 다 표현합니다. 그런데 헌물은 하나님께서 규정해 놓은 헌물만 드려야 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흠 없는 제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이나 드렸고, 아무렇게나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먼 희생제물을 바쳤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했다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멸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11절에 보면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이름입니다. 영광을 받으실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수컷으로 드려야 할 봉헌물을 흠 있는 것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싫어하시는지 너희가 나에게 하는 제사를 총독에게 드려 보라. 총독이 너희를 받겠느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한들 내가 너희를 받겠느냐! 너희가 헛되이 드리는 제사 때문에 성전 문을 받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회복과 구속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은혜를 받은 자로서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반응하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을 통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열정과 섬김과 예배가 회복되어 새롭게 일어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