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에 관한 이야기가 이사야 8,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힘을 의지한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징조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북방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에서 절망과 탄식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담겨있습니다. 더 나아가 절망과 탄식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자들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이 담겨있는 본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서 기쁨과 평강의 날이 찾아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빛으로 오신 메시아를 통해서 이뤄질 것을 예언합니다. 전에 고통을 받고 흑암 가운데 살아가던 백성이 메시아를 통해 구원을 받을 것을 예언합니다. 현재 이 백성들은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 멸시를 당하는 자,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가 있는 자로 묘사됩니다. 실제로 이 백성들은 이방 민족의 포로로 끌려가 고통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묘사는 모든 인생들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인간이 가진 한계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오심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죄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셔서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친히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대상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 즉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회복과 구원의 대상은 남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자는 누구입니까?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모두가 타락한 상황 가운데서 끝까지 견디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자가 남은 자입니다. 이러한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메시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는 남은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은 하루하루를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 약속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메시아는 어떤 분이십니까? 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한 아기, 한 아들이 오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메시아는 참 사람으로 오실 것임이 한 아기, 한 아들로 표현됩니다. 기묘자는 놀라우신 분입니다. 이는 메시아가 참 하나님이심을 표현합니다. 모사는 좋은 자요 지혜로운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뜻하신 바 모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영원히 존재하시는 아버지입니다. 메시아가 참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실 것임을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평강의 왕은 영원한 중보자가 되어주심을 의미합니다. 메시아는 이 땅에 화평과 평화의 나라를 가져오십니다. 이사야는 복음의 선지자로 불렸습니다. 왜냐하면 확신을 가지고 메시아에 대해 분명하게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메시아가 오시면 주어지는 은혜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알려진 메시아가 오셔서 주시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1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고통과 흑암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흑암과 고통은 당시 시대적 배경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스불론 땅, 납달리 땅, 해변 길, 이방의 지경은 수도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이 지역은 중앙 정부의 간섭과 돌봄을 덜 받게 된 곳입니다. 이방 군대들이 자꾸 쳐들어왔던 지역입니다. 그러면서 이방 종교와 문화가 자꾸 유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유혹이요 시험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시험과 유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을 1절에서는 멸시를 받는다는 표현으로, 4절에서는 멍에, 채찍, 막대기로 표현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흑암이라고 표현합니다. 소망도 생명도 없고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을 흑암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가운데 메시아가 오시고 빛이 비춰옵니다. 빛이 임하면 흑암이 사라지고 생명이 소생하며 변화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회복과 구원이 임합니까? 주님께서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멸시를 당하며 흑암 가운데 있던 땅, 이방의 유입으로 인해 고통 당하던 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영화롭게 하십니다. 또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흑암에 행하던 백성,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은혜가 주어집니다. 생명과 소망과 평강을 주시는 빛이 비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와 소망과 생명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나라를 창성케 하십니다. 그로 인해 얼마나 즐거운지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이라고 묘사합니다. 이 묘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임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다는 것은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가 이방 민족을 쳐부수고 기쁨을 누리는 일을 의미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를 쳐부수고 은혜와 기쁨과 평강을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시험하고 유혹하지만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이 싸움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승리하고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지만 결국에는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이를 성경은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십자가 대속으로 의와 평강을 이루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주님 앞에 서셔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흑암에 앉은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서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신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매일의 삶 속에서 충만하게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