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의 번영과 전성기를 누렸으며,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말기에 이르러서는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그릇된 모습을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면 죄와 가까워지고, 죄에서 떠나 말씀과 가까이 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을 때, 솔로몬은 하나님께 신실한 믿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누리면서 인간의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말씀이 절대적이며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세속적인 정욕과 욕심에 이끌려 살아가면, 말씀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고 말씀의 권위가 약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세상의 정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경고를 주십니다.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열왕기상 11:11-1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경고를 바로 실행하셔서 솔로몬의 대적들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얻어 왕이 되리라는 말씀을 듣고, 솔로몬을 대적하다가 크게 패하고 애굽으로 도망갑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허락된 길이 주어지더라도 조급하게 먼저 움직이지 말고,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기억하며 묵묵히 기다려야 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때로부터 주어진 무거운 멍에로 인해 힘겨움을 호소하던 자들이 르호보암을 떠나, 여로보암을 왕으로 새워 북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국가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약 210년 되는 기간 동안 19명이 왕이 통치를 하게 되는데, 성경은 북이스라엘의 왕 대부분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호세아 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호세아는 앗수르에 의해 세워진 왕으로, 집권 초기에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며 잘 섬겼고, 이스라엘의 다른 왕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악한 왕이었고, 죄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자신 스스로의 평가 속에 갇혀 있지 말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 것인지 반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죄악의 모습에서 돌아서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평양! 지금 그곳에 그리스도인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 주권 아래 하나님의 말씀은 다 말살되었고, 말씀 따라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은 다 처형되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과 행복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행복하다, 잘 산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복음이 변질되고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그 곳은 이미 멸망의 땅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멸망한 민족들에 대해서 보여주시는데, 이 말씀은 그때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고 우리의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축복의 땅, 축복의 나라를 물려줘야지, 멸망되어질 나라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경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죽자, 호세아는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앗수르에게서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회복하기 위해 결단해야 했건만, 믿음이 없고 말씀 속에 무장되지 못한 이스라엘은 도리어 도울 힘이 없는 애굽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앗수르의 새 왕 살만에셀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모습에 격분해서 3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포위했는데, 오히려 그런 상황 속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것을 의지하면서 정작 도우시는 하나님은 외면하고 말씀에서 떠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이 의지할 만 하고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정작 우리의 도움과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격분한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한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실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인도자이신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이방 나라의 풍습과 규례를 좇아 살았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배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산당을 만들고 이방 신상을 세워 섬겼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 악한 길에서 벗어나고, 죄의 길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이 곧은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합니다. 언약을 지키지 않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따라가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 남유다는 죄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죄의 길에서 돌이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의와 노력으로는 도무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것은 곧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예배가 살아야 하며 말씀으로 말미암은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의 물질과 정욕과 권세들로 우상을 삼지 말고, 자신의 회복을 위해, 교회의 회복을 위해, 나라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간구할 때 이 나라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서, 이 땅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