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일 사건 사고의 소식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도 안전한 곳이 될 수 없다는 불안함 가운데 살아가고 있고, 그것에 대한 대비책으로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세월호 학습효과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월호의 참사와 그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인해 관련 부서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이후에 계속되는 사고들로 인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고 발생 확률을 더 부풀리게 되고, 그로 인한 불안감도 더 부풀려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전에 대한 경감심이 커지면서 불안에 대한 만성화가 계속되고, 그래서 불신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어떤 사람과 제도와 힘과 시스템도 두려움으로부터 사람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말씀을 통해서, 고난의 현장 속에서 함께 하시고, 고난의 현장에서 건져내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이 힘겨움과 절망의 고난 속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참된 위로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떠한 고난과 힘겨움의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붙잡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하며, 실제로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이사야서가 작성된 당시에는 중동의 강대국이었던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계속해서 전진하여 남유다에게까지 돌진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고, 이미 고난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될 것이라고 예고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대적의 침략과 그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함과 절망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악에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온갖 우상들을 섬기며 죄악을 범하며 살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는 우상들을 버리고 죄악에서 떠나서 순결함의 모습, 정직함의 모습, 거룩함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야 구원함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어려움과 고난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죄 가운데 살아가는 백성들은 주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경험할 수 없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외쳐지고 백성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주어져도, 백성들은 쉽게 회복하거나 엎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믿음과 경건의 삶, 그리고 말씀에서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백성들의 완악함으로 인해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1절에서 3절까지는 해방에 대한 말씀, 4절에서 9절까지는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읍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 10절과 11절에는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비록 나라가 멸망당하는 아픔과 포로가 되는 슬픔을 만나게 되더라도, 약속된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붙들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로 인하여 사람들이 불안함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소망의 메시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훗날 포로가 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갈지라도 절대 절망하거나 용기를 잃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사야의 뜻이 아니라, 이사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로 인하여 절망하고 있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소망의 말씀을 주시며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의 이 말씀은 구약시대 유다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메시지가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주어지는 구원과 회복이 필요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의 말씀으로, 바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어떠한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용기를 얻고 힘을 얻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이것을 먼저 깨달은 우리들이 위로와 회복이 필요한 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소망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되어주신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고통을 이미 경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고통을 겪어본 사람의 위로가 그렇지 않은 자들의 위로보다 더 큰 힘이 되기 마련입니다. 죄와 인생의 질고로 고통당하고 있는 인생을 위로할 자는, 인생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비우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배고픔과 외로움과 멸시와 배반과 핍박을 당하셨으며, 육적인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다 당하시고 죽음까지도 경험하신 분입니다. 이런 모든 고난을 겪으셨기에, 이 땅에서 고난과 아픔을 겪으며 고통당하는 자들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이러한 모든 사정을 아시는 주님이야말로 진정한 위로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로자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위로가 필요한 자들과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슬픔이 주님의 슬픔이고, 우리의 아픔의 주님의 아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주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한 자들은, 성도들이 아프고 힘들 때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일이 바로 성도된 자들의 도리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위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1:28-30).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의 위로자가 되셨습니다. 우리 대신 지시지 못할 짐이 없고, 우리 대신 감당하지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이 위로의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하시면서 끝까지 주님 안에서 살기를 기뻐하며 그 주님으로부터 진정한 위로와 도움을 얻고, 슬픔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에게 위로자 되시는 주님을 증거하는 사명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