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교만함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도록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보려는 착각 때문에 발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신앙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안다면 이전에 자랑하고 신뢰했던 것은 수치스러운 것들이 되고 맙니다.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는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패배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능하신 여호와 앞에 서서 말씀을 깨닫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능력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고, 자신은 약한 존재이며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악한 자들은 자신의 허물과 약함이 드러나는 것을 망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자들은 자신의 추함과 약함을 보는 고통을 감내하며 하나님 앞으로, 진리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와 같이 약한데서 온전해진다는 말씀은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약함이 있어야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약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능력과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겠다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들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이런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그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공급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2)”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울 자신을 가리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가 하늘의 능력과 신비한 것을 경험했고, 사람이 감히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이고(2),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었습니다(4).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5).” 자신은 신비한 일들과 하늘의 능력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참 많았던 사람입니다.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고,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상류층에서 살았으며, 가장 좋은 학문의 배경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엘리트였고, 열정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고, 인격적·도덕적·사회적으로 흠 잡을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것들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의지하고 자랑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는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세상적인 것들을 잃는 것보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잃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적으로 의지가 될 만한 것들과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의지하여 하나님에게로부터 멀어지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약한데서 온전해진다는 말씀은 약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씀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이 잘 보이고, 자신의 연약함 또한 잘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과 죄의 모습들을 밝히 깨닫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들을 통해 큰 나라를 이루며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었지만, 자신이 가진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모든 간구에 응답해주시고 그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부터 건져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믿음이 자라면 자랄수록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다시 세우시고, 이런 자를 붙들어 은혜 속에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약함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약한 것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찾고 의지할 수 있으므로, 약함은 곧 은혜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었기에 이것을 떠나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 역시 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입니다(9).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으니, 그것이 바울에게는 능력이고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약함이 최대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약한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충만히 경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바라보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신의 약함만을 바라보게 된다면 이 사람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약함이 보이고 그 약함까지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약합니다. 혼자서는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부모가 꼭 붙들어 줍니다. 그러면 부모의 힘으로 아이들은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십니다. 걸어갈 힘조차도 없을 때 하나님께 나를 맡기면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나를 안고 가십니다. 큰 문제가 앞을 가로 막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힘으로 살 때, 그 능력과 힘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능력과 힘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말씀을 선포하며 병자들을 고쳐서 하나님의 능력과 복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며 고백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 입술에 능력을 주시고, 병든 자들을 위하여 손을 얹을 때 그리스도의 손이 그 위에 함께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고 깨달은 나의 약함을 자랑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나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신령한 기쁨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임 받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