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짐은 점점 무거워지고, 사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고들 얘기합니다. 잘 살기 원하는 마음이 있고 또 이것을 위해 노력하는데도 삶이 힘들고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이 약하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대응할만한 힘이 없고, 해결할 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둘째는 혼자라고 하는 외로움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혼자라고 생각하며 외로움을 느낍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도 있지만 그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고 한계를 가진 사람들이기에 완전한 도움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위로를 받고 힘을 얻기 원하지만 위로를 주거나 힘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모든 힘겨움은 하나님과의 단절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고, 자신이 약하고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없게 되고, 무능력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궁핍한 데도 처할 줄 안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고 고백합니다. ‘능력주시는 자라고 하는 전제도 가지고 있지만,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은, ‘내게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무능한 자가 아니라 능력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힘과 내 능력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능력과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 말씀과 믿음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살기를 원하셨고, 깨어졌던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되어 우리가 능력 받고 살아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죄로 인하여 언제나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며, 그로 인한 불안함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와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죄로 인한 불안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셨고 인도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단절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회복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회복되어야 살 수 있고 영생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회복이 바로 구원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능력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모든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이 일을 진행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삼으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게 하시고, 십자가를 지도록 하신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 진행된 것입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계획을 다 순종하셔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 중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의미의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뜻과 작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며 임마누엘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태어날 아기를 예수라고 알려주었고(마태복음 1:21), 마태는 구약의 예언을 토대로 그 이름을 임마누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23). 이 이름 자체는 다른 것 같지만, 마태는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고백합니다(마태복음 1:22). 이것은 마태가 예수와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이름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였다는 뜻입니다. 즉 이 말은 구원을 의미하는 이름 예수가 함께 하신다는 의미의 임마누엘이시라는 것인데, 이것은 곧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예수님 앞으로 나온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이 사랑을 통해서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어야 그 백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하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가운데 있던 죄의 장벽들을 다 허물어 내신 것입니다. 막힌 담이 허물어짐으로 인해 이제는 언제든지 하나님과 교통하는 관계가 되었고, 화목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이 이것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끊어졌던 관계가 이제는 다시 회복되었고, 사랑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고, 우리에게는 이미 하늘의 영생이 주어졌기 때문에 사탄이 주는 위협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소망과 영생의 은혜를 가지고 살아감으로 인해서 더 이상 인생의 짐으로 인해 고통 받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능력과 힘으로 세상과 시험에서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