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누가복음 23장에는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와 헤롯의 심문 장면이 나오고,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모습과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시는 광경이 등장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실 때, 갈보리 언덕 위에는 십자가가 하나만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세 개의 십자가가 함께 세워졌습니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가 있었고, 양쪽에는 행악자와 강도라고 소개되어 있는 두 사람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두 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처형 받게 한 이유는 예수님을 두 행악자와 똑같이 죄인 취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에 대해서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53:9).”고 하여 예수님에게 죄가 없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이 갈보리 언덕 위에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왼쪽에 있었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에는 회개하기를 거부했던 사람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회개 없는 행악자의 십자가, 멸망의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십자가가 멸망을 앞둔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어리석습니다(고전 1:18). 십자가가 구원을 이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뿐더러 거기 달린 예수님도 어리석게 보이고, 어리석다고 생각되니 믿지 않는 것입니다. 왼쪽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가 이와 같았습니다. 그에게는 구원에 대한 믿음이 없었고 예수님이 어리석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고 무시했던 것입니다. 그 행악자는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말했습니다(39). 이것은 정말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비방하고 그분의 십자가를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현장에 있었던 관리들과 군인들도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희롱했습니다(35-36).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는 지금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렸지만,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끝까지 마음이 완악하여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릴 만한 죄를 지었다면 그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하는데, 그는 끝까지 죄를 시인하지 않고 변화되지도 못한 채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행악자와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소식이 증거되었지만 마음의 변화를 받지 못하고 끝까지 완악한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왼쪽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구원과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고 은혜를 부어주실 때 회개도 하고 구원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가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잡아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오른쪽에 있었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회개하고 구원받은 자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도 왼쪽에 있는 자와 똑같은 죄를 짓고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 오른쪽 십자가에 달려 있는 자는 왼쪽에 있던 자가 예수님에 대해서 비방하고 조롱하는 것에 대해서 꾸짖었습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40-41).” 비록 그는 십자가에 달릴 만큼 흉악한 범죄자였고 이제 곧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그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음에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고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죄에 대한 보응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42).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믿음으로 고백한 이 말로 인하여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귀한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 마지막 순간에 그는 큰 은혜를 경험했고, 그 은혜를 믿음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할 수 있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은혜는 어떠한 자격과 조건도 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음을 얻고 바른 길을 발견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영원토록 받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운데에 있는 십자가는 만민을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달리신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양쪽에 있는 행악자들이 다 볼 수 있는 가운데에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깨닫고 만나고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인들 사이에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는 멸망의 십자가가 아니라 구원의 십자가였습니다. 누구라고 해도, 그가 어떤 죄를 지었다고 해도, 또 어떠한 시간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가친척들 가운데 그들이 어떠한 모양으로 살아가고 그들의 나이가 어떻게 되었든,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붙들기만 하면 그들도 구원받습니다. 왼쪽 십자가에 달렸던 자는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멸망의 자리로 나아갔지만, 오른쪽 십자가에 달린 자는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무관한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도 행악자이며 죄인이었고 멸망 받을 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당하신 예수님은 바로 우리들의 주님이시고, 그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들을 위한 십자가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며,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잘 감당하며 섬기고 충성하는 성도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