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의 구원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에는 삭개오를 세리장이며 부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2). 그는 유대사회에서 수탈자로 악명이 있던 사람이었고, 매국노라는 인식을 주기까지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하기 원했고 만족을 누리기 싶었지만, 키가 작아서 많은 일에 제한을 받기도 했습니다.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셀이 무엇이 인간으로 불행하게 하는가라고 하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보면,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들은 어렸을 때부터 만족감을 정상적으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 만족을 추구하게 되는데, 다른 만족들보다 더 큰 가치를 그 한 가지에 두고 그것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과정은 무시해버리고 성과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며, 심각한 경우에는 강조하는 그것에만 몰두하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을 현실에 적용해보면 사람들이 오락이나 마약 등에 중독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은 그런 것들로부터 결코 만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삭개오가 바로 이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한계로 인하여 심적·육적으로 고달픈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세리장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 그 심령을 만족해줄 수 있습니까? 육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육체에는 어느 정도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심령의 만족감을 누리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고 부자였지만, 그에게는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채우지 못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한 과정에서 저질렀던 연약함과 죄악들을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영적인 만족감과 구원의 기쁨을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소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소망하며 살았던 삭개오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이 원했던 죄 용서함을 받고, 연약한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열망함을 갖고 하나님께 기쁨이 될 만한 것들을 소망한다고 해서 모든 길들이 순조롭게 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죄에서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었지만, 키가 작았던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는데 길이 열리지 않고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것이 바로 불행의 요소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불행의 요소들이 많습니다. 건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진로의 문제, 결혼의 문제, 출산의 문제들로 인해 실망하고 불행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와 장애물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문제 앞에서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 어떠한 일을 앞둔 상황에서 방해받고 장애를 만나더라도 절대로 좌절하면 안 됩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예수님께 각종 문제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기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몰려든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예수님께 나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중풍병을 치료받고 나음을 입을 것이라고 하는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는데, 현실적인 문제 앞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앞에서 그들은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 지붕을 뜯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지붕으로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을 때,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 키가 작았던 그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통로에 위치한 돌무화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절망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먼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앞길에 한 길만을 마련해두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길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길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좌절할 만한 상황 속에서 절망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시편 37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23-24).” 성도들이 살면서 넘어질 때가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기 때문에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현실에서 만나는 실패와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며 능력이고 소망이심을 기억하며, 예수님만을 따르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삭개오는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좌절과 실패의 순간에도 넘어지지 말고, 기도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주변을 다시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면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어려움이 극복될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을 꺾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삭개오가 바라 본 돌무화과나무가 보입니다. 삭개오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중풍병자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처럼, 삭개오의 마음 역시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일과 절망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능력과 소망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갈망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고, 생각지도 못했던 은혜와 구원의 축복이 그의 집에 임하였습니다. 현실의 문제만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능력과 축복으로 인해 인생의 모든 막힌 길을 열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