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경에 나타나는 주인공은 요나입니다. 북이스라엘 출신의 요나는 니느웨에 대한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라고 말씀하셨는데(2), 하나님이 요나에게 가라고 하신 니느웨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였던 앗수르의 수도이며,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800km 떨어진 곳입니다. 그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러나 편협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빠져있던 요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는데, 다시스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3,200km 떨어진 곳으로 니느웨와 반대방향이었습니다. 요나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들이 구원받는 것은 부당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니느웨와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어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도 무효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욥바라고 하는 항구에 도착한 요나는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고, 삯을 주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하고 딴 길로 가는 요나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통해 큰 일을 이루겠다고 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과 섭리 속에서 진행됩니다. 요나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큰 바람을 불게 하시고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나게 하시며 요나의 앞길을 막으셨습니다. 이에 사공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요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배 밑에 내려가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함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곤한 상태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아주 잠깐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따르며 잠들어 있는 자들을 반드시 깨우십니다. 배 밑층에서 잠들어 있는 요나의 상태는 영적 침체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혹독하게라도 그 사람을 깨워 바른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은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과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무뎌진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요나는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요나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불신앙과 불순종의 잠을 자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고 은혜생활을 하지 못하고 말씀이 본이 되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는 것, 우리는 그것을 신앙의 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잠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혀 각성의 계기로 삼지 않고, 자신의 몸과 사업과 가정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그것에 대해 무감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의 사인을 계속해서 보내셔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요나와 같이 잠만 잡니다. 잠은 달지만 그 결과는 아픕니다. 요나 때문에 사람들이 폭풍우를 만나고 힘들어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우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겨움을 겪고 어려운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내 마음 속에 있는 평안과 기쁨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요나와 같이 깊은 잠에 빠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절대 스스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요나는 스스로 깨어나지 못했지만 요나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깨우시는데, 그 첫 번째 도구가 바로 폭풍우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셔서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하셨습니다(4). 큰 폭풍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요나를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는데, 이것은 징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표현에서 징계는 하나님의 교육적인 도구라고 하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의 잘못된 가치관을 깨뜨리시기 위해 폭풍이라고 하는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이 징계는 요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12:5-6).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징계와 채찍질을 통해서라도 바로 잡고 바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비록 징계를 받을 때 아프고 힘들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익이고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잠에서 깨우시는 두 번째 도구는 사람입니다. 큰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요나가 깨어나지 않자, 선장이 요나를 깨웠습니다. 그리고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6).”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가고 있던 요나는 하나님과 또 그분의 사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의 사람 선장으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은혜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거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시는 음성이라고 생각하며 깨어나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자신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은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를 사명 전하는 자의 모습으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게 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가 우리에게 아픔을 주고 힘겨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사명 감당하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딴 길로 가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을 나 스스로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깨우시고 돌이키게 하셔서 말씀을 전하는 사명의 자리, 충성의 자리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낯을 향하여 돌이키는 것이 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셔서 성도의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