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신적인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앞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에 익숙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데,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긍정적인 모습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소망하는 모습이 바탕이 되어져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와 생각으로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시편 94편에는 생각의 폭에 대한 교훈과 생각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시편 94편은 비탄시로 분류되는데, 하나님의 성도로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경건한 시대를 비탄하며 지은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19절에서 내 속에 근심이 많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근심은 생각이라고도 표현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 생각 중에는 우리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잡념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끊임없는 잡념들 속에 불안하고 근심과 염려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들 속에 근심하며 살아갈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 상태가 공허한 마음 상태가 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그리고 그분의 뜻으로 채워져 있다면 공허한 상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생각과 세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불투명한 앞길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마태복음 6:25)’라고 하는 육신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만 할 뿐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그분의 뜻에 대한 생각들은 비워져 공허한 상태가 되는데, 마귀는 이러한 틈을 타서 우리에게 근심을 주고 염려를 하게 합니다. 이러한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성도들은 어떠한 환경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 전능하신 하나님과 능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은 그 약속의 말씀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마음을 지켜야 하는데, 생명의 근원이 이것에서 나기 때문입니다(잠언 4:23). 애굽을 떠나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목격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문제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을 잊은 채 불안해하고 근심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근심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이어졌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연약한 모습으로까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가 채워져 있지 않고 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마음속에 가득 채워져 있을 때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할 수 있고, 불안이나 근심과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또한 매일매일 마음속에 말씀과 믿음을 채우고 묵상하며, 참된 영성과 경건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마귀에게 빈틈을 제공하지 않게 됩니다. 현대를 불안의 시대, 상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그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채우고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십니다(11). 또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1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우리의 생각과 처지와 형편을 더 잘 아시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과 우리의 앞날에 일어날 문제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성경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불안한 상황과 낙심되고 절망되는 환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붙들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으며 살아가게 될 때, 근심과 걱정으로 인한 마음의 빈틈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시다고 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이러한 믿음을 간직하며 살아갈 때 마귀에게 빈틈을 주지 않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은 어려움과 근심 가운데서도 우리의 위안이 되어주십니다(19).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내가 피할 반석이 되십니다(22). 우리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나에게 위로가 되시며 위안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요새가 되시며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며 내 안에 역사하고 계시다고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문제를 만나고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여도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담대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사람들을 미혹하는 다른 교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훈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순종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의 다른 교훈들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그 말씀으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나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들과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나에게 없다고 할지라도,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로 나아올 때 문제의 해결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경험하고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