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코엘이라고 하는 심리학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심리적 병리현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두려움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독감과 같이 인간의 내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12편은 111편을 보충해주는 시라고도 하는데, 111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서 찬양하는 내용이고, 112편은 이러한 찬양을 보충해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본문 112편은 하나님의 영향력 속에서 살고 있는 의인들의 행복과 헌신에 대한 말씀과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7절에 등장하고 있는 흉한 소문이 그 원인입니다. 여기서 흉한 소문은 악한 세상에서 들려오는 많은 소식들을 의미합니다. 악인들 때문에 일어나는 위협들, 인생사를 겪으며 일어나는 어려움들, 예상되는 불길함과 불안함들, 그런 것들로 인해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나라의 경제적인 위기와 전쟁에 대한 위협, 그리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문제, 질병과 위험한 환경 속에서의 불안함 같은 것들이 바로 두려움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 대한 해답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7). 주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는데, 왜냐하면 이 사람이 주를 신뢰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이사야 26:3). 여기서 심지가 견고한 자와 주를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 이 세상에 흉한 소문들과 소식들이 들려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도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신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속에서 평강의 축복을 받고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믿음은 행함으로 완전해집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는 현장에서도 이러한 믿음은 그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열쇠가 되고, 그로 인해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첫 번째는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1). 이 복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로, 하나님 말씀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사모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그 말씀을 가까이 하여 읽고 듣고 쓰며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예배 때마다 들려지는 말씀에 대해 기대하며 사모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예배를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쉐마(신명기 6:4)’라고 하는 것을 간직하며 살아가는데, 그 말씀을 사모하고 지키고 싶은 마음에 작은 상자에 담아 문지방에도 걸고, 손목과 이마에도 묶어서 다닙니다. 말씀을 잊지 않고 늘 사모하며, 언제나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다짐의 마음으로 그렇게까지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말씀의 지시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의뢰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삶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브리서 4:12).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대한 자극을 받고 찔림을 받습니다. 그로 인해 살아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말씀을 받았다면 그 말씀이 한 주간을 살아가는 동안 찔림이 되고 자극이 되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몇 가지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첫 번째 모습은 정직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정직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직한 삶의 모습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나에게는 더욱 온전한 믿음을 제공해주는 것으로서 대단히 유익이 되는 모습입니다. 정직이라고 하는 말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국 가는 그날까지 좌우로 흔들리지 아니하고, 요동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신앙과 말씀의 정도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정직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원한다면, 그들로 하여금 먼저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사랑한다면 정직하게 살아가는 일들은 저절로 일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말씀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붙드는 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의 변화된 모습은, 말씀대로 베풀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데(4),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것(5)과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는 삶(9)이 바로 그러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부족한 자들을 섬기고 나누는 삶이 실천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사모함으로 정직하게 살고 베풀고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후손들이 강성한 복을 받고(2), 부와 재물을 소유하게 되며(3), 어려움과 고난으로 흑암 가운데 처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빛을 공급받고 잘 되는 복을 누리며(5),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6).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인하여 이러한 복을 받아 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