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떠난 불의의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유다 최후의 개혁자이고 신실한 요시야 왕은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이후 세워진 왕들은 요시야와는 달리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다 지켜봤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 요시야와 이방 민족과 싸우는 가운데 전사할 수 있습니까? 둘째는 이렇게 불의하고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유다를 하나님께서 왜 심판하시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은 죄악은 반드시 멸망될 것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범죄한 유다는 갈대아의 침공을 받게 되어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응답이 하박국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에 하박국은 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범죄한 유다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한 도구로 이들보다 더 죄가 많고 더 악한 민족인 갈대아로 삼으신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이 때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 그는 갈대아 왕입니다. 갈대아 왕이 교만하였습니다. 교만은 인간의 근본적인 죄요 마귀적인 죄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정직하지 못합니다. 갈대아 왕은 부패하고 타락한 자입니다. 그리고 이런 악한 자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는 공의롭게 심판의 도구인 갈대아 왕도 멸하실 것입니다.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던 상관없이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환난의 때일지라도 의로운 자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반드시 죄악은 심판하십니다. 또 의인은 그런 가운데서도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신실함. 정직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앞에 정직하게 행하고 신실하게 반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살아가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겸손하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이 말씀의 이면에는 악인으로 살면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언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의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악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의의 백성으로 살아가면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 되시고, 현실 가운데도 여호와만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고 원망과 불평이 있었지만 깨달은 후에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었고, 의지할 수 있었으며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찬양은 어떻게 됩니까? 1절입니다.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이는 찬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기오놋은 음악적 표현입니다. 시기오놋은 식가욘입니다. 빠른 템포로 열광적으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빠른 템포로 열광적인 마음으로 찬양했던 것입니다. 2절입니다.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니 놀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깨닫고 나니 하박국 선지자가 거룩한 흥분 가운데 빠른 템포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는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다른 하나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옴소서. 이 두 가지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일도 구원의 일도 속히 되어지기를 하박국 선지자가 기도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말씀을 교회의 부흥, 구역의 부흥, 우리 심령의 부흥을 위해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나 원래 성경의 말씀의 뜻은 다릅니다. 수년 내에는 짧은 시간 내에라는 뜻입니다. 부흥은 살게 한다’, ‘생명을 베푼다는 뜻이 있습니다. 배경을 보면 유다 백성들은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기도합니다. “죄에 대해 심판받는 것은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오니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구원해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짧은 기간 내에 구원의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시는 기간이 짧고 구원의 능력을 베풀어주시기를 간청한 것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진노는 고통스럽습니다. 그 가운데 구원이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으니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긍휼은 다른 말로 사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성경대로 의인은 심판 중에라도 믿음으로 삽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 구원받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와 심판에 대해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긍휼, 사랑입니다. 하박국은 능력을 가진 여호와께 간구합니다. “고통의 때가 너무 길게 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가 의지할 것은 여호와의 긍휼 뿐이오니 우리를 구원하여주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 마음에도 간직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문제, 직장의 문제, 자녀의 문제, 가정의 문제 모든 문제 속에서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살려 주십시오. 짧은 시간 내에 속히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박국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사랑과 긍휼을 근거 삼아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하고,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 받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7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의 구원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능력으로 건지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찬양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박국이 찬양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광명, 광선, 권능, 역병, 불덩이가 그에게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에게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심판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심판 가운데 있는 자들 중에 자기 백성을 구원할 수 있으십니다. 그러면서 하박국은 과거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행하셨는가?’ ‘어떻게 이 백성들을 구원해내셨던가?’ 생각하면서 기도합니다. 그 예로 든 것이 바로 구산과 미디안의 이야기입니다. 구산은 지금의 에티오피아입니다. 구산이나 미디안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던 강대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이들은 다 패하고 쫓겨났습니다. 미디안은 기드온에 의해 멸절 당했습니다. 구스는 아사 왕 군대에 패배했습니다. 지난 날의 역사를 하박국은 기억했습니다. 지난 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구원의 능력으로 지금 하나님의 백성을 기억해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 성경을 근거로 기도했습니다. 하박국은 지난 날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확신을 가지고 백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8-16절까지 하박국은 자기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대적을 물리쳐주십시오. 화살을 바로 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시행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신 주님께서 친히 군대를 이끌고 원수들을 멸절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능력과 싸우심을 보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결국 하박국은 찬양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자 소망이 되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힘든 모든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