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와 은사를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서로 힘을 모아 함께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 성도 간에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겪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첫째는 사람들이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이는 교만하고 자기 자랑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둘째는 은혜는 헛되이 받았습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은사를 남용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지도자인 바울에 대해서도 악의적이고 비방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는 너희의 마음을 넓히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참아주고 용납하면서 이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의 마음도 넓히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교인간의 불화는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입니다. , 우리 가운데서 문제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너희 심정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고, 옹졸하고 편협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자들을 바울은 넓은 마음으로 받아냅니다. 마음은 인격,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장입니다. 마음이 넓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넓히셔서 고린도 교회의 허물까지 인내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받아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내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마음이 넓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그 마음이 넓어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고린도 교회 성도를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주님의 음성에 순종으로 반응하고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사라지고 성도들의 신앙은 회복될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권면은 첫 번째 권면보다는 더 강하게 권면합니다. 둘째는 거룩성을 훼손시키는 일은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앞의 내용은 용납하고 참고 인내하면서 권면을 주시만 거룩성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외칩니다. “너희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성을 훼손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떠나고. 버리고. 나오며. 모든 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의 문제는 심각할 정도로 우상숭배가 자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생활상 퇴폐적인 문화들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영적인 타락은 육적인 타락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경배할 때 육신적인 면에서도 더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쫓아가다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의 육적인 생활에도 병들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 전체가 우상숭배로 물들어 있고 그로 인해 퇴폐적인 생활상들이 만연했을 때 유행했던 속어가 고린도식으로 산다였습니다. 이는 퇴폐적인 문화 속에서 우리도 방탕하게 그에 물들어 살아보자는 뜻입니다. 교회는 자신이 위치한 지역의 사회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권면은 너희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니 말씀 따라서 살아가고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당시 고린도교회는 퇴폐적인 문화 속에서 신앙생활의 심각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지역의 사회적인 문제를 그대로 묵인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믿지 않는 자는 불신자들과 이교도들입니다. 불법에 속한 자, 어둠에 속한 자, 벨리알에 속한 자, 우상에 속한 자입니다. 믿는 자는 의에 속한 자, 빛에 속한 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성전에 속한 자입니다. 비슷할 수가 없고 섞일 수가 없는 완전히 다른 자들입니다. 다른 존재요 다르게 살아가는 자가 믿는 자입니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씻음 받고 의와 거룩한 길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의와 거룩한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더러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이 세상과,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자와 관계를 완전히 끊고 살아가야 하는가? 성경은 일상생활에서 세상과 세상 사람들과의 단절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불신자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이때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교회와 함께 해야 합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교제하는 일들을 계속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도답게 세상과 구별되어 순결을 지키고 동화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더 깊이 관계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과 더 깊이 관계하면 안 됩니다. 의와 불법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이 서로 사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서로 조화될 수 없습니다. 벨리알은 무가치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성전과 우상도 일치할 수 없습니다. 이 원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별되어 살아가야 하는 원리이고, 성도들의 생활 모든 부분에 다 적용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생명을 소유하고, 천국에 갈 자들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신자는 불신자와 분리되어야 하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결코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항상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붙드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대로 세상의 더러움에서부터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적인 모습을 다 떠나고 오직 하나님을 닮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떠나고 세상과 철저하게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시대에 왜 그토록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보내셔야 했고, 경고의 말씀을 주셔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복하라고 한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쫓아내야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용정책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의 우상을 본받게 되고, 심령과 생활이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순결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도가 세상에 동화되면 세상을 닮아갑니다. 작은 누룩 하나가 그 전부를 다 망가뜨립니다. 작은 누룩 하나라도 떼내야 합니다. 구별과 분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입니다.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이는 즉각적입니다. 불신자들로부터 즉각적으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우상의 본거지에서 분리시키셨습니다. 롯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분리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죄악에서 분리되어 거룩함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나와야 할 곳에서 나오고 떠나야 할 곳은 떠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우리의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죄를 멀리하고 악한 것, 부패를 멀리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삶을 따라갑니다. 주를 경외함이 우리의 거룩함의 원동력입니다. 성도의 삶의 목표는 성화입니다. 거룩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거룩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 안에서 즉각적인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 주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