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지역은 부유했습니다. 이 곳에는 대형극장, 경기장, 목욕탕 등도 많았습니다. 여기서 사는 자들은 모두 풍족하고 부유했습니다. 대지진이 일어나고 도시가 파괴되었을 때 자력으로 도시를 재건할 정도였습니다. 이 지역에 에바브라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초반에 골로새 교회나 히에라볼리 교회와 같이 바울의 지도에 의해 건실하게 자라갑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풍족함 속에서 안일해지고 도시의 타락하고 세속적인 분위기에 젖어 마치 사데 교회와 같이 영적 무기력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국 신앙생활이 미지근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뜨겁게 신앙 생활하라고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형식은 분명히 있지만 뜨거움은 다 사라져 미지근한 상태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예수님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멘은 충성, 참된 증인과 함께 주님께서는 진실하시고 성실하신 분임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아멘으로 소개합니까? 성도가 성실하지 않고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근본은 만물의 창조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유의 창조자시고 부족함이 없으셔서 모든 피조물과 온 세계를 운영하신다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으로 소개합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 세상과 삶에 매여서 주님을 향한 뜨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달리 칭찬할만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단지 책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미지근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알고는 있지만 충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입니다. 차다는 것은 복음을 전혀 모르거나 복음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상태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의 말씀과 복음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지근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마저도 없었습니다. 뜨겁다는 것은 복음을 만났고, 주님에 대해 뜨겁고 열심을 품고 섬기는 상태입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상태입니다. 차든지 뜨거우면 복음을 접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상실해버린 미지근한 상태에 놓인 성도에게 주님께서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은혜를 받는 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 주님을 따르는 일에 뜨거움과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언제나 뜨거운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원하심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부요한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나 실상 신앙생활에서는 뜨겁지 않고 대충하고 살아갔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복음을 굳게 붙잡고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살리는 일에는 열심이 없었습니다. 미지근한 상태는 꾸며진 불신앙의 모습이자 일종의 위선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지역은 풍족한 지역인데 이 가운데 교회가 세워졌기에 성도들은 재정적으로나 인원으로나 풍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내적, 외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자기만족에 빠져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부족함을 모르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겉만 그럴 듯 했지 영적으로는 빈곤한 모습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들의 비참한 상태를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미지근한 성도에게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 알아들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온천이 있었는데 온천이 뜨거운 온천이 아니라 미지근한 온천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목욕하기는 좋았는데 이 물을 마셔보면 토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상태는 전혀 뜨겁지가 않고 미지근해서 주님께서 토해내버릴 정도였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미지근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미지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책망 하시는 가운데에도 사랑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를 사랑하시기에 말씀 주시고, 책망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정입니다. 친구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성도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 가운데 주시는 권면은 첫째,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입니다. 여기서 불은 시련입니다. 금은 믿음입니다. 시련을 통해 갖게 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이 어떠하든지 순결한 믿음, 굳건한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7절의 말씀대로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둘째,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입니다. 흰 옷은 성결과 칭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 땅에서 구별한 자답게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는 흰 옷 입은 자들만 들어갑니다. 그러니 주의 백성들이 성결케 되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만큼 순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의를 힘입어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셋째,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입니다. 성도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분별력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안약이라고 표현하셨을까요? 이 지역에는 약학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안약이 유명했습니다. 주님은 안약을 통해 성도에게 자신들을 바로 보고 영적인 것들을 분별하며 성령의 지혜와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내게서 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세상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에게만 있습니다. 주님에게 돌아오고 주님을 만나야만 금도 흰 옷도 안약도 살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나에게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은 주님께 나아오는 것조차 어려운 비참한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래서 주님께서 성도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이전부터 오래도록 서 계심을 의미합니다. 이전부터 오래도록 문을 두드리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돌아오면 회복되고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상거래를 할 때는 집에서 했습니다. 집 안에서 거래를 했습니다. 그냥 거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찬을 나누고, 식탁 교제 가운데 충분히 교감을 한 후 거래했습니다. 이러한 관습을 빗대어 주님께서 성도를 찾아오셔서 치유와 회복을 약속해주십니다. 주님과 친밀하고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 마음을 열면 뜨거운 신앙의 사람으로 회복되고 자라가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뜨거운 성광의 성도가 되어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신앙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