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는 소아시아의 다른 교회들처럼 외적인 큰 핍박이나 환난이 없었습니다. 사데 지역은 지형적으로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읍이어서 군사적으로 유리한 지형이었습니다. 적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격하거나 쉽게 공격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데 사람들은 안일한 생각을 하였고, 그로 인해 여러 차례 함락당했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상공업이 발달하여 쉽게 부유해질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치하고 게으르고, 부도덕한 모습들을 나타내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여신을 섬겼는데 난잡하고 문란하였습니다. 이런 도시에 사데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 내에 세속적인 것들이 들어오면서 성도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신앙적인 부분에서 게으르고, 무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설명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 일곱 별은 교회를 지키고 있는 천사들을 의미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이로 볼 때 주님은 완전한 지식과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시고 성도들과 이 모든 세상을 살피시는 사역을 완전하게 감당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사데 교회의 행위를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과 우리 내면의 생각과 감정까지도 다 알고 계심이 성도에게는 감사와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죄인들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다 노출되는 것이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데 교회의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첫 번째 말씀은 교회에 대한 책망입니다. 사데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달리 책망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교회는 칭찬이 먼저인데 사데 교회는 책망이 먼저입니다. 이는 사데 교회의 신앙의 상태가 상당히 위급함을 알려줍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신앙적으로는 이미 죽은 자로 간주될만한 모습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데 교회의 성도는 외형적인 행사나 사역은 잘하고 빛난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심으로 의식을 행하고 교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참된 신앙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없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었습니다. 성도의 삶의 원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원칙이 세워지지 않은 가운데 껍데기 신앙을 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 영적인 보초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는 영적인 보초를 세우지 않고 세속적인 것들을 다 받아들였습니다.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가 함락되었듯이 사데 교회도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화려하게 봉사나 여러 신앙적인 행위는 있었으나 사실은 경건과 성령의 능력도 없이 그냥 했던 것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것이 없었다면 사데 교회의 신앙행위는 이었습니다. 교회로서의 본질적인 모습이 없이 잘 꾸며진 공동묘지와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사데 교회는 로마와 유대인들에게0서도 박해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박해를 면제받은 교회였습니다. 박해를 받을 만큼의 교회로서의 가치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를 향해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꺼져가는 심지가 완전히 꺼지면 어두움에 빠지고 죽은 상태가 되는데 이를 아시는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해 일깨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희미한 빛의 모습을 붙잡으라는 뜻입니다. 아직 남아있는 작은 믿음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각성해야 한다.’ ‘신앙의 양심과 작은 믿음을 깨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복음을 듣고 받았을 때의 감격,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의 감격,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의 감격을 되살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생각하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작은 믿음도 되살려내고, 처음 사랑도 되살려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일깨지 아니하면 주님께서 도둑같이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심판의 때를 의미합니다. 갑작스러운 심판이 임한다는 의미입니다. 피할 수 없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일깨워서 다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심판자로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사데 교회를 향한 두 번째 말씀은 이런 가운데서도 주시는 칭찬의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는 시대의 풍조를 좇아 세속에 물들어 성도들이 영적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외식, 방탕, 게으름에 처해있던 모습을 책망 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순수하고 순결하게 신앙의 정절을 지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몇 명입니다. , 소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 몇 명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는 이 몇 명을 잘 아십니다.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왔던 성도를 아시고 그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너무나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순결한 주의 백성들은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붙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들을 향해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의 복을 주십니다. 약속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닐 것입니다. 성도가 천국에서 흰 옷을 입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도 주님께서 부르실 그 날까지 이 땅에서도 성도는 흰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의복을 고쳐 입으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사람, 영적인 모습이 흰 옷을 입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구원받은 자로서 예수님을 닮아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의의 길을 걷고 의를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흰 옷을 입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 교회의 모든 교인들은 둘 중 하나입니다. ‘산 자이든지 죽은 자이든지’, ‘흰 옷을 입은 자인지 흰 옷을 입지 않은 자인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흰 옷 입은 자의 삶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흰 옷 입은 자를 합당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진흙 속에서 진주처럼 귀하게 여김을 받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모두가 어두워져가고 진흙탕이 되어가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순수성을 잃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믿는 자는 합당한 자입니다. 흰 옷은 순결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흰 옷을 입고 살아가는 자가 몇 명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노아시대 때도 홍수 가운데 구원받은 자는 노아과 그의 가족뿐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좁은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두 번째로,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흰 옷입은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됨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로,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이 자는 이긴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약속의 은혜, 영광 모두를 우리는 누려야 합니다. 이 세상 모두가 다 귀를 막고 살아가지만 귀 있는 자들이 되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면 그 신앙을 발버둥 치면서 끝까지 경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무너져있다면 일깨워야 하고, 다시 붙잡아야 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믿음의 행위를 지키고, 하나님을 온전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신앙으로 주님의 심판의 때를 준비하며 흰 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시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