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였고 작가였던 존 번연은 훌륭한 설교자였는데 당시 성공회 외에 다른 집회는 안 된다는 명령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명 다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감옥에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때 고린도후서 129절의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번연은 이 말씀을 받은 후 감옥의 고난 생활 가운데 천로역정과 많은 저술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그가 낙심하여 실패자가 되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깨닫게 되어지면서 그는 족한 은혜를 알게 되었고, 그 가시 은혜로 말미암아 새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의 내용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영적 체험, 곧 하나님이 계시는 세 번째 하늘까지도 올라가는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교만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의 놀라운 체험으로 인해 자신이 교만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교만하지 않고 낮아지기 위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신이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주셨고 그것이 바울을 괴롭히는 모습이 되어졌습니다. 성경은 교만을 참 위험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사람이 가진 근본적인 죄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늘 낮아질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겸손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교만할까 염려해서 이와 같이 육체의 가시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서 우리들도 어떤 교만의 경향성도 꺾어 내야겠고, 하나님의 은혜로 겸손한 봉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가 무엇을까요? 아마도 질병이나 그의 연약성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울이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셨던 하나님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바울이 교만하지 않도록 주신 하나님의 수단, 곧 하나님의 은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욥기에서도 욥에게 나타난 사탄의 사자로 말미암은 고난이 있었으나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결말 맺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모양의 가시로 인해 그것으로 아프고 힘들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수단이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탄의 사자, 육체의 가시가 무엇일까요? 육체의 가시는 인간의 몸을 이야기합니다. 가시는 날카로운 막대기라는 뜻입니다. 사람 몸에 이런 날카로운 막대기가 박혀 있으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이 되는 것. 그것이 가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에서는 사탄의 사자가 매개체가 되어 욥을 괴롭히는 모습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는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괴로움과 불행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시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로 말미암아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육체의 가시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유력한 것은 심각한 질병이라고 해석되어집니다. 먼저는 간질, 두 번째는 학질, 세 번째는 안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교만하지 아니하도록 육체의 가시를 그에게 두었다 하는 것이니까 그 질병이 그 가시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 자체가 은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교만하게 되어지면 어마어마한 사람이 되어질 사람인데, 그런 그가 교만해지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 육체의 가시, 곧 육체의 심각한 질병이었습니다. 바울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이 하나님의 수단인 육체의 가시를 깨닫게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어지면서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어려움이 떠나가게 하기 위해서 세 번이나 간구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려움이 왔을 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고난을 허락하시는데 그럴 때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 기도할 때 두 가지 응답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절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종종 다르게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응답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어려움을 거두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이미 은혜와 긍휼히 풍성하게 주어졌다.라는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교만할까 하는 요소가 있고, 그런 가운데 낮아져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욱 찬송하고, 더욱 하나님의 영광된 일들을 위해 자라가게 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두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응답이었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금방 나태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모습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징계와 훈계를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징계와 훈계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강하면 하나님은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시게 되어집니다. 복음을 전하자. 하는 일을 하지만, 이것이 겸손하게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할 때 역사하시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어졌습니다. 10절에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약할 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요, 육체의 가시가 있다는 것이 은혜가 되어지니 육체의 가시를 원망 말고 그것을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은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만 주시면 좋을 것을 육체적 가시도 같이 주십니다. 영적인 체험하고 육체적인 가시도 같이 두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밀하게 영적, 육적인 밸런스를 잘 맞추어가는 균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의 영적 교만을 없애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처방이 육체의 가시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걱정 근심 괴롬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에 피난처 되시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려 아뢰는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46절과 7절의 말씀에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육체의 가시가 있는 약한 우리들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이 말씀에 새 힘을 얻어 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들을 이뤄가시는 주님의 성도님들 다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