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아의 홍수 시대의 모습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죄악 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육신의 소욕을 따라 행하게 되는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올무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가나안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들을 이들의 신으로 받아들이면서 섬기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아스다롯을 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 신들은 이방신들의 대표적인 신들이었습니다. 먼저 바알 우상은 주인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신으로 그 신은 풍요와 다산의 신이었습니다. 농업 공동체로 살아가던 당시 사람들은 바알을 만족시키면 우리에게 풍요함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바알에게 제사할 때는 남창과 창녀들이 집단 난교를 벌임으로 자기의 신을 흥분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다산을 기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육신적 욕심으로 말미암는 난잡한 모습의 신을 하나님은 미워하시고 금하신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생각해볼 것은 아세라 신인데, 아세라 신은 바알 제단 옆에 세워진 나무로 깎아 놓은 수호신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세라 상을 찍어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목상으로 만들어 놓은 아세라는 신의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아세라도 바알과 마찬가지로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가나안 사람들은 믿고 섬겼습니다. 세 번째로는 아스다롯인데 아스다롯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번식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아스다롯은 번식하는 것과 함께 쾌락을 주관하는 신이었습니다. 이렇게 세 신들이 대표적인 우상들이었는데 그 세 존재들의 공통점은 바로 풍요라고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세신들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농사가 잘되어 많은 결실이 맺어지고, 인구가 많아지는 것을 목적하였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 사랑, 쾌락, 다산, 풍요를 기대하였던 가나안 민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이 이러한 신들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땅에 들어가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중심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함, 땅에 충만케 되어질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들어가 이방 민족이 섬기는 신들을 쫓아냈어야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이방 신들을 따라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신들을 따라가게 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러한 모습 가운데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우상 섬김의 모습이 계속된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오늘날도 나타나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도 이런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아스다롯을 섬기는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고 그러한 모습들을 완전히 끊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신들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하면 그것은 풍요와 다산을 줌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는 존재로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우상이었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풍요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임을 말씀하여 주는데, 이 우상들이 가지는 축복과 풍요는 오직 이 세상 속에서 육신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모습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요와 축복을 변질된 모습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변질된 모습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신들을 따라 섬겼는가 하면 그들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으로 말미암아 우상들을 따라간 데는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여호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가르쳤었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것을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결국 하나님이 경계하셨던 세상의 육신의 것들을 취하고자 함이 점점 커지게 되면서 결국 하나님을 버리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풍족함이 다 죄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육신의 풍족함만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늘나라를 구하고 신령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별되어졌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육신의 풍족함만 따라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육신의 풍족함만 따라감으로 우상을 따라 섬기게 된 것.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해낸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만을 알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성경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변질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모습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방신들을 따라감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바알과 아스다롯만 꿈꾸며 살아갔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준비하는 생활들을 포기하고 죄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운 삶을 겪어야 했습니다. 멸망될 세상 속에서 수치와 모욕된 모습, 조롱과 멸시의 모습으로 세상에 쫓겨 살아가게 되는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성경의 말씀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령적인 백성들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육신적 쾌락만을 꿈꾸며 변질되어짐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만나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사 시대의 모습과 같이 오늘날도 예수님만 믿으면 복 받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런 잘못된 기복신앙적인 모습은 우리 시대의 바알과 아세라 아스다롯의 모습과도 같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바알과 아세라, 아스다롯과 같은 변질된 욕심으로 말미암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풍성한 나라, 영원한 나라를 꿈꾸면서 신앙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의 모습들이 성경적 목적, 성경적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꿈꾸면서 살아가시는 인생들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