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전 문맥인 15-17절까지의 말씀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고백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 증거에 대한 확신은 우리 삶에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게 됩니다. 곧 천국을 상속 받습니다. 영광의 천국은 성도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고난이 있고, 믿음 지키며 살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천국이라는 영광을 생각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를 설명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질 기쁨과 영광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받으신 후 영광에 들어가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믿는 자로서 고난을 당합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핍박과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현재 교회도 많은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여성복지부가 조만간 성 평등을 공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을 다 인정한다는 개념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지금 성의 결정권이 사람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종교인 과세도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교회를 세상의 하나의 기관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입니다. 교회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 많은 고난이 교회에도 주어집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러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신 것처럼 성도도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러야 합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참된 신앙의 모습을 갖추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해 신앙의 나태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회피하지 말고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광의 천국에 들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는 말씀은 인내하고 오래 참으면 반드시 영광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만나는 고난의 일들은 쉽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세상은 교회의 모든 것을 끌어내려 교회의 특수성을 없애고 모든 종교와 동일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즉 십자가를 끌어내리려는 사회적 움직임들이 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러한 힘들고 어려운 일들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는 자는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는데 주께서는 왜 고난을 주십니까?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함입니다. 더 주님 닮은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강해지도록 하심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시려고 시험과 핍박을 주십니다. 더 나은 은혜의 상태가 되는 성도로 자라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모이기를 힘써서 비진리를 물리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말씀과 기도로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고난을 당한 성도의 바른 자세는 영광은 영원하나 고난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고난과 영광이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련과 환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경건생활에 힘쓰고 지체들과 함께 모이기를 힘쓰며 싸워 이겨내시는 성광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죽은 자의 부활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현실에서 만나는 많은 시련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겨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도 믿음으로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현세의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나름 잘 나가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만나지 않았던 고난과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삶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수고도 많이 했고, 감옥도 가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태장을 3번 맞고, 돌에도 맞고, 파선도 3번이나 당하고,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당하다보면 사람들은 이제 그만 예수님을 믿겠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다시는 예수님을 믿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려운 고난을 만날 때 넘어지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울은 하늘을 경험했습니다. 신령한 체험을 통해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맛보았습니다. 그 후 바울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너무 힘들고 아픈 육체의 문제를 가지고 지금까지 기도해왔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를 경험한 후에는 그 고난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난만 겪고 있으면 죽을 만큼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체험을 맛보니 태도가 변합니다. 고난을 이겨내면서 순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여러분, 고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영원하다면 우리는 그것 때문에 죽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믿음으로 몸부림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뒤에 예비되어 있는 영원한 영광이 있기에 고난을 주십니다. 성도는 현실에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이후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영광의 소망으로 인해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영적인 체험을 한 후 피조물들의 탄식소리를 듣게 됩니다. 피조물도 고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합니다. 온전한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주어질 것인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때라는 표현은 무슨 뜻입니까?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만물 앞에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공표될 것이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인데 이들 뿐 아니라 만물들도 그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날들을 고대하며 인내하고 있는데 성도는 더욱 더 그 날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바울은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올 한 해 개인적으로 육체적인, 정신적인, 가정적인 문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교계에도 여러 고난이 있습니다. 이단들도 교회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현대에는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이시고, 이를 통해 목적하신 바가 있으십니다. 성도가 더욱 모이기를 힘쓰고 믿음으로 힘차게 전진하며 이후 주어질 영광을 바라며 고난의 때를 이겨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