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일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17에 보면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께서 홍수를 심판의 목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과 허락된 짐승들은 방주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비가 왔고 비가 그친 후에도 물이 불어나서 150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6:5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해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사람들이 모두 타락했다는 의미입니다. 1:21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23절에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썪어질 우상으로 바꿨습니다. 인간의 우상숭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정욕과 욕심에 따라 살아가는 죄를 범합니다. 29-31절까지 죄의 열매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와 죄인을 향해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심판의 대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면서도 섬기지 않는 자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한탄은 극한 고통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근심은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모습으로 인해 주님은 실망하고 안타까워하며 아파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행하신 후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를 그치시고 물이 줄어들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억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표를 하다, 새기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서도 노아와 그의 가족과 짐승들을 마음에 새기셔서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공의로우신 분으로서 여전히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으로 사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노아와 방주 안에 있던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심판에 놓여있을 때 노아의 방주 안에 있던 피조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의 대상인 반면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6:9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고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세계를 선악 간 심판하실 때가 올 텐데 그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대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의 대상의 모델은 노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으로서 심판 중에서도 구원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은혜의 대상입니까? 첫째, 의인입니다. 이 말은 노아가 절대적으로 의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노아도 연약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인이라고 평가받은 것은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인데 그나마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의를 행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도 이러한 시대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더욱 섬겨야 합니다. 둘째, 당대에 완전한 자입니다. 타락한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따르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자 하며 더욱 거룩하게 살기를 힘썼던 자라는 의미입니다. , 악한 세대로부터 건짐 받아 구별되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교통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자입니다. 여러분,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고 항상 죄악만 행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혼자 의를 추구하고, 혼자 하나님만 따르고자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며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애쓰고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분명 거룩하게 사는 것은 힘들고 어렵고 치열한 싸움이 있지만 이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방향이자 태도이자 자세였습니다. 세상은 미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입니다.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향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죄인은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의 대상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고 그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힘든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의 대상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물이 걷히고 땅이 건조해진 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심판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이 이뤄짐을 보여줍니다. 날짜를 기록한 것은 보라 이제 새 날이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노아 이야기는 족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는 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심을 알려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안위를 주심을 알려줍니다. 6:15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삶이 시작됩니다. 또한 17, 9:1을 보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아담에게 주셨던 복입니다. 이제 노아의 때에 아담의 복이 다시 주어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복을 누리며 새로운 시작을 하라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복을 누리며 은혜를 받아 이 땅에서 주님의 구원을 누리는 자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