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다음주에 한국 땅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신다면 짐을 꾸리실 때 어떤 것을 먼저 챙기시겠습니까? 저는 선교사로서 선교사의 삶이 뜨네기의 삶이고 나그네의 삶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1년간 거하면서 살림살이들이 적지 않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영국에서 철수하면서 그 짐을 정리하며 많은 고민을 하게되었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절대로 손에 쥘 수 있는 만큼만 들고가겠다고 정했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출국할 때에 ‘무엇을 꼭 가지고 가야 절대 가치가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했는데도 한국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런 걸 왜 가져왔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짐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반드시 챙겨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물질만능이 팽배한 오늘날의 시대에까지 변함없는 절대가치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야할 위험한 광야길, 불타는 사막길,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글로벌 시대라고 하는데, 글로벌 시대의 최고 가치관이 되어버린 경제의 절대화, 물질의 절대화라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셉의 유언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짧은 유언의 마지막 세 절에 요셉의 유언과 죽음 그리고 장례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부분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매우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유언과 장례식입니다.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보통 글을 쓰는 저자들은 처음과 마지막 부분을 신경쓰지 않습니까? 처음 부분은 독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글을 씁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결론으로서 독자들의 생각 고민, 상상을 요구하면서 마무리 합니다. 특별히 창세기의 결론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왜 요셉이 자손들에게 해골을 메고 가라고 했을까? 요셉의 해골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요셉의 예언대로 되었을까? 라는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또 한가지 창세기의 결론이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이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그것은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유언은 특이합니다. 요셉은 17세에 당시 최 강대국 애굽에서 노예와 죄수의 신분으로 그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10대에 외국에서 유학생의 신분도 아니고 노예와 죄수의 신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바로의 실세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 덕에 그의 가족들은 다 애굽에 이주해서 애굽이 제공하는 교육 문화 복지의 혜택을 누리며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요셉의 인생이 끝날 때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생명이 다 된줄 알고 그의 형제들과 자손들에게 아주 특별한 유언을 남깁니다. 그 유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땅에 반드시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언의 내용은 이상합니다. ‘내 해골을 메고 가라’ 땅에 묻지 말고 ‘입관’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손들은 요셉의 장례에서 ‘입관’만 합니다. 장례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장례식은 어떻게 될까요? 요셉을 묻었다는 기록은 모세오경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요? 요셉의 장례식은 여호수아에 가서 끝이납니다. 이 기록을 한 모세는 왜 400년 전의 요셉의 기록을 남겨두었을까요?

출애굽의 때에, 히브리인들은 쫓겨나듯이 급박하게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금, 은을 챙기기위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챙겼습니다. 요셉의 해골은 ‘하나님을 향한 조상의 신앙’을 상징했습니다. 광야에서는 금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은 지금도 그들의 삶을 지휘하고 계신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광야 같은 세상 길을 살아가면서 요셉의 해골을 메고 갑시다.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타는 사막길을 그 무거운 해골을 들고 다닌다니요. 신앙생활도 우리 인생길에 너무나도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앞에 반석을 쳐서 물이 나는 역사, 만나와 메추라기의 역사,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적과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나타나고,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