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떠났던 아브라함! 그런데 그는 흉년 때문에 당시에 풍요롭고 먹을 것이 많았던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거나 묻지 않고 결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계보를 이어서 이삭을 낳을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서 애굽의 왕 바로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은 인간 중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따라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하나님만 믿고 따라가야 했지만, 흉년이라고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만나게 되면서 모든 게 무너지고 엄청난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애굽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거부하고 인간이 주인으로 살아가는 악의 처소로 상징됩니다. 성도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상황에 부딪혔다고 해서 악의 처소로 가는 일을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방해하는 사탄의 전략을 깨닫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약속을 바라보며 믿음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애굽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과 아내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고, 애굽으로부터 풍성한 가축과 노비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당한 재력가가 되었는데, 이것은 또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가축들이 늘어나고 많아지다보니 목축지가 부족해졌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머물고 있던 곳은 고산지대로 쉽게 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목자들끼리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땅을 먼저 선택해서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이러한 선택과 양보의 모습 속에서 두 사람의 성격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먼저 롯의 선택입니다. 아브라함의 배려로 먼저 거처를 선택하게 된 롯은 육신의 안목을 따라 살 곳을 결정했습니다. 성도는 선택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식해서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지만, 롯에게는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눈에 보기 좋고 욕심이 나는 것뿐이었습니다. 사실 롯이 선택한 땅은 물이 넉넉하고 초목이 무성한 곳이며, 성경에서도 그곳을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롯은 이와 같이 욕심에 이끌려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만약 롯이 그 땅을 영의 눈으로 바라봤다면 그 땅이 심히 부패하고 타락되었으며, 회복이 불가능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선택하게 된 것들은 금방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요일 2:16-17).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택해야 합니다. 바른 것을 선택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면서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원한 축복의 길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롯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보호를 받으며 그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롯이 가진 것은 모두 아브라함에게서 얻은 것들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는 아브라함에게 받았던 것들을 기억하고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양보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롯에게 아브라함은 안중에도 없었고, 롯은 자신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며 육신의 욕심에 이끌려서 자신이 살 곳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육신의 욕심에 이끌려서 살아가는 자들로,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염치도 없고 배은망덕한 이러한 모습은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롯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뉴스와 매체를 통해 일어나고 있는 강력 범죄들, 사람들의 돈을 빼앗고 훔친 사례를 보면 대부분 그 범죄의 이유가 유흥비 마련에 있습니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범죄를 하면서까지 돈을 취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롯은 자신이 선택한 곳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착실하게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점점 더 향했던 곳은 소돔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소돔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롯은 눈에 보기에 더 좋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해서 그곳으로 갔는데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화려하고 더 흥미로운 것을 좇아 죄악의 땅인 소돔 땅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욕심이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욕심 때문에 넘어가야 할 것을 못 넘고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들을 뛰어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본질적으로 어두운 세상과 동거할 수 없도록 구별된 존재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빛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아브라함의 선택입니다. 그의 선택은 하나님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마음에 드는 곳을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양보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내세우지 않고 포기하는 희생의 제안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 내려가서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러한 실패와 실수 속에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하나님을 위해서만 선택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만 살겠노라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결단을 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지난 실수의 때와 같이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양보했습니다. 하나님의 격려가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선택을 기뻐하시고 또다시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은혜와 축복을 수반합니다.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며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십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고 품으면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하나님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양보하고 희생하며 믿음으로 선택한 이 아브라함의 선택이 성도들 모두의 선택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