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9. 주일 낮예배 담임목사 설교
“형통한 삶을 위하여” (예레미야 22:13-19)

네가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15-16)


이 시대는‘경쟁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월한 삶,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어떤 때는 불의한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악을 품고 죄를 범하거나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무신 등 영적 타락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방법과 철학을 따라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다릅니다. 세상의 교과서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게 그의 아버지 요시야 왕과 비교하며 권면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입니다. 15절에 ‘네가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하므로’에서 백향목은 당시의 화려한 궁전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물질, 지식, 세상의 법칙에 따른 성공을 의미합니다. 외적 환경과 조건을 의미합니다. 여호야김과 오늘의 세상을 이와 같은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형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는 말씀은 여호야김은 형통하지 못한데, 그의 아버지 요시야는 형통했다는 의미입니다.

‘형통’이란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재벌과 같이 풍성한 자가 되는 것과 막힌 길이 열리고 암담한 현실에서 문이 활짝 열리며 새로운 대로가 뻗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형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과소비와 쾌락에 탐닉하는 삶을 멀리해야 합니다(15). 세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요시야는 이와 같은 것을 절제하며 멀리했습니다. 과소비와 쾌락에 빠져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취하지 말아야 하고, 이와 같은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두 번째, 공평과 의리를 행해야 합니다(15). 하나님을 중심한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요시야는 백향목으로 지은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 초라하고 퇴락한 성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 자기와 백성들이 헌금하였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다가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던 중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중심한 삶을 결심합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백성 전체에게 권면하고 요시야와 온 백성들이 그 결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했습니다(16). ‘신원’이란 어떤 사람의 억울한 누명을 없이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위로와 도움을 주고 입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의 편에 서서 도와주었습니다. 잠언 19장 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형통하였습니다. 열왕기하 22장 2절에는 요시야 왕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씀은 요시야가 하나님을 믿음과 삶에서 말씀에 중심하였다는 평가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기 위해서 요시야는 먼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16). 우리 역시 먼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