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는 유다 출신으로, 목축을 하고 뽕나무를 재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뛰어난 영적 통찰력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아모스를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당시 유다 왕국은 웃시야, 북 이스라엘은 여러보암 2세가 다스릴 때였는데, 이 남북은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되고,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요로운 시기에 남북은 종교도덕적으로 부패되고 타락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때를 영적인 암흑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아모스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 선포하도록 하셨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을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하나님의 의와 뜻대로 사는 자들에게는 귀한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선포하시며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모스가 과거의 영광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현재와 장래의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애통해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받아 마땅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자신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착각 가운에 있던 백성들에게 아모스는 마치 사자를 피하려다 곰을 만나고 벽을 짚다가 뱀에게 물리는 것같이 심판이 주어질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는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여호와의 날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실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본문은 공의의 하나님과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심판 속에서 이스라엘이 회복할 수 있는 방법, 즉 심판받아 마땅한 이스라엘의 형식적인 예배와 가증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죄악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기회를 붙잡고 회개하여 여호와의 날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여호와의 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여호와의 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의 날로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타락한 곳 세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찾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이러한 사망과 멸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는 죄를 끊고 발걸음을 돌려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장소인 벧엘은 야곱이 단을 쌓았던 곳이고, 브엘세바는 아브라함 때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장소는 더 이상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죄악의 장소가 되어버렸고,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악하고 음란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타락한 것, 세속화된 것들을 더 이상 탐닉하지 말고, 눈을 돌리고 마음을 돌리고 발길을 돌려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신령한 것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공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잃게 되면 미움이 가득하고 정직과 진실이 인정받지 못하게 되며, 악을 사랑하고 불법과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참이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악에 대해서는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회복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 번째 방법은 심판이 있을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불의한 일을 버리고 멸망당하고 심판받을 자리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심판은 반드시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있는 그곳을 멸망시키실 것이지만, 선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대접해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삶의 모습으로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마음이 없고 껍데기뿐인 이러한 모습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그들에게 내릴 심판과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네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모스서의 핵심주제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를 기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그 죄악으로 말미암은 심판이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5:24).’ 이 말씀이 아모스서의 핵심구절인데, 경건한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제사와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과 삶이 수반되지 않는 제사는 껍데기만 있는 가증한 종교행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제물을 보시지 않고 그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제물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그 마음이 실천되어지는 거룩한 삶의 모습에 있습니다. 우리 성광의 식구들이 말씀에 따른 거룩한 삶의 모습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회복된 성도들과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성도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으면 영적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뜻하신 길을 걸어가며, 말씀이 성취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여호와의 날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