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신경 쓰고 고민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믿는 자들을 적대시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것은 성도인 우리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답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무엇이라 가르칩니까? 성경은 진정성 있는 모습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도모하라고 가르칩니다. 그 모든 사람에는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를 적대시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을 행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 심취되어 있던 자이고, 유대교에 대한 자신의 신앙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최고 명문 산헤드린의 일원이고, 대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멸시하고 배타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바울의 신념은 곧 기독교를 탄압하고 적개심을 드러내는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반되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까지 강조하신 것은 죄인을 용서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았던 바울은 분명 편협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그의 삶에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편협했던 그의 가치관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대인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한 행동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행동의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도 사랑이시고, 십자가도 사랑, 구원도 사랑이기에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단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으로 영원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는 변하는 사랑이 아니고, 거짓이 없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순수하고 깨끗하고 존귀한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사랑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입니다. 상대방보다 자신이 먼저 이러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함이 아니라 선함이 실천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특정한 대상이나 특정한 상황 속에서만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든 누구와 있든 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습과 더불어 성도는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이러한 모습은 필레오 사랑입니다. 이것은 형제를 아끼고 존중하며 우정의 마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들에 대해서 좋은 마음과 아끼는 마음과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감성적인 모습들이 우정과 애정으로 나타나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지런한 실천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는 바쁘다는 핑계를 극복하여 성령 안에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헌신해야 합니다. 성도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이와 같은 열정과 헌신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도 변함없는 열정과 헌신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열정을 다해 사랑하고 품어줄 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서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교회의 성도들과 구역원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필요와 환경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형제가 부족한 것이 있거든 채우고 공급해주며 대접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도들은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 중에는 궁핍하고 굶주려서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하며, 섬겨줄 수 있는 힘이 있고 여력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베풀고 섬겨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까? 성경은 그들을 축복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고통을 주는 자들일지라도,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한결같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원수를 악으로 갚지 말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사역을 통해 원수를 사랑하는 모습의 본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사랑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삶은 즐거운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同苦同樂). 기쁨과 즐거움을 같이 하듯이 어려움과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형제에 대한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비록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지만, 성도들은 형제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의 상황 속에 뛰어들어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성경은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열어 그들을 품어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월의식이나 높은 마음을 가지지 말고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겸손하게 섬기고 선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평화로운 모습을 만들어가야 하며, 그러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나를 해치는 원수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자들에게 바다처럼 넓고 부드럽고 친절하고 풍성한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본이 되어주셨습니다. 성도된 자로서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고 실천하여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