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예수님의 양육을 받았으나 많은 부분 그들의 믿음에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현실에 문제에 빠져서 자신들은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늘 믿음이 없다. 믿음이 작은 자여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 죽으심, 부활, 승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죽음과 고난만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낙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도 없고,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회복시키기 전까지는 제자들의 모습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주셨고 이를 통해 제자들은 믿음과 사명을 회복시켜주시는 귀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셨고, 성령이 임하게 되어진다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 성령을 받게 되면 이제 주님이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처음 부르실 때의 그 사명을 이루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6장에 나오는 다락방 강화에서도 약속하신 성령이 보내질 것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제자들은 늘 낙심하고, 실수 투성의 모습이었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가 되어지고, 그 변화는 성령을 기다리라는 그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하는 모습으로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절을 지냈습니다. 부활을 확인했으면 이제는 우리의 신앙도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믿음 있는 자로,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천을 본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내에 있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약 120명 정도가 되었고, 그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런 기도하는 모습도 제자들의 변화되어진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되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그들끼리 서로 모여 서로 누가 크냐 하는 서열 다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신 목적과 뜻은 전혀 그런 누가 크냐 작냐 하는 것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분명한데도 그들은 서로 분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제자들은 변화되었고 이제는 마음을 같이 할 줄 아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한다. 는 말씀은 두 단어가 합성되어진 단어입니다. 하나는 한 자리에 라고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한 자리에 마음이 모여있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한 자리에 마음이 모여 있어서 오로지 힘쓰게 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장소에 모여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이런 합심 기도는 초대교회의 부흥의 특징이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고 성도들이 한 방향 속에서 기도를 하게 되니까 초대 교회는 든든히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기도하는 모습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제자들은 핑계를 대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지켜가는 일들로 변화되어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 신앙을 가졌다면 우리도 우리의 모습 속에 이런 변화되어진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관해 말씀을 하시는데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이 올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제자들은 기도에 힘쓰면서 그 성령이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새롭게 변화가 되어진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확신 가운데에 있는 마음을 같이 하고 힘써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임하여지는 성령의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데 그것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온 집에 가득하며 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것은 형체가 보이지 아니하지만 분명하게 역사를 하고 있는 성령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오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게 되어지면 모습, 형체는 보여지지 아니하지만 분명히 계시고, 분명히 역사하시게 되어집니다. 두 번째는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있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빼고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그런 성령이 우리 모두에게 강하게 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성령이 주장하시는 대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이제 그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평소 때 배워보지 못한 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외국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이런 외국어 방언은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시적으로 나타난 외국어 방언이 누구에게 나타나 지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된 제자들에게 나타나 지게 되었습니다. 이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인데 어떻게 그런 외국어를 할 수 있지? 하면서 모여든 무리들에게 놀랍게 여겨지는 소동이 일어나게 되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새술에 취하였다.라고 삐딱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성령 강림 속에서 제자들은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가 외국어라는 증거가 오늘 성경 속에 나타나고 있는데 그때가 유월절 오순절 때가 되어져서 예루살렘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을 지키려고 모인 사람들은 꽤 열심히 있는 사람들인데 전 세계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모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유대, 아라비아 사람들. 이 사람들이 모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언어는 대체적으로 3가지였는데 셈족 언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였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출신의 예수의 제자들이 지금 그들의 출신지 언어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령이 임하시게 되었을 때 이런 언어를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복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일들. 그 복음 전파의 일들을 위해서 제자들이 지금 외국어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외국어로 말하는 방언 외에도 귀신 쫓는 능력, 권세가 생기는 것도 모두 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 그 방언을 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 곳에서 복음을 듣게 된 전 세계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출신지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출신지에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게 되어지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은 성령을 강하게 임하게 하시고, 이런 은사가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된 제자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게 되어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어진 것이고 사명자로 살아가게 된 것처럼 우리들도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변화되어진 모습이 되어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확신에 믿음, 순종의 믿음, 말씀의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 마음을 같이 할 줄 아는 믿음,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일에 함께 모일 줄 아는 믿음, 주님의 복음을 함께 짊어지는 믿음. 그리고 함께 주의 역사를 감당하며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님들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