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기도 하셨고, 또 음식 정결례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신 적이 있었는데 이에 전통적인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 오셨으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율법을 폐하기 위해 오신 분이라고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을 향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너희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진 의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 당시에는 네 종파가 있었는데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열심당이라고 하는 파였습니다. 바리새파는 분리라는 뜻을 가지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경건하게 사는 가장 엄한 종파로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두개파는 의롭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종파로, 모세 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면서 영적인 존재들, 천사들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대단히 현실주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종파가 에세네파라고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금욕적 삶을 위해 사람들과 떨어져서 자기들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열심당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셀롯인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에 속하는데 이 열심당파 사람들은 애국주의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고 무력으로라도 빼앗겼던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네 종파 외에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계층이 있었는데 서기관이라고 하는 계층이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쓰면서 성경 박사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성경 연구를 하여 30세가 되면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앞에 말씀 가운데 나오는 네 종파와 이 서기관 계층의 사람들의 모든 공통분모는 이들이 율법을 잘 알고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들의 의가 이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많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그들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유는 그들의 의에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 번째 문제점은 그들이 가진 의는 지극히 외적이고 형식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악한 마음은 그대로 둔 채 겉으로만 계명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고 계명을 지켰으나,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의 변화 없이 지켰던 그들의 의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께는 회칠한 무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이런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두 번째 문제점은 그들의 의에는 온전함이 없는 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온전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였고 부분적으로 지키면서 자신들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철저하게 십일조를 세어 드렸으나 내적으로는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리고 드렸던 것입니다. 미가서 6장 말씀에 하나님은 천천에 수양도 아니고 만만의 강물과 같은 기름도 아니라고 말씀하면서 사람아 주께서 선하신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정의, 인자, 믿음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인데 율법의 더 중한 정의, 인자, 믿음은 버리고, 사소한 조상들의 유전을 지키겠다고 힘쓰고 노력을 하는 모습이 바로 완전하지 못한 부분적인 의로움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온전하지 못한 의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이들의 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자기중심적이고, 인간적인 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거리에 나가 크게 나팔을 불고 기도를 하면서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 세리와 창녀,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 것에 대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라고 하는 부분들은 주님이 은밀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시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겸손한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렇지 아니하고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기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금식도 얼굴을 흉하게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하였습니다. 결국 이런 자들은 하늘로부터 받을 상이 없고, 이런 자들은 천국에 자기가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천국문을 막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가진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로움을 지켜나간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놓고 보았을 때에 우리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뛰어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이들보다 더 뛰어나게 의로움을 실천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처럼 살 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들은 천국에 시민이 되어졌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어졌습니까? 그것은 의로움을 양적으로 더 많이 지켜진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어진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어진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는 것은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신 더 나은 의였는데 이것이 바로 율법의 완성자, 성취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의 이것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것 가지고는 곧 인간적으로 내가 어떤 의로움을 행하여 획득하는 것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로만 천국을 얻을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은혜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부족한 중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말미암아 천국을 얻게 되어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인간적인 의로움을 내세우며 살았던 사람이었으나, 그가 예수님 믿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나자 예수님 밖에 있을 때 획득적으로 얻으려고 했던 의로움이 배설물과 같이 추잡하게 느껴져서 그러한 획득적인 의로움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의로 배부르게 되면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자기의 인간적인 의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임을 깨달으면서 나의 연약함 속에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에 순종하면서 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 곧 오직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옷 입게되어 천국 가는 사람들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천국 가는 백성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세상과 구별된 온전한 삶을 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