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아 타격을 입게 된 후 사무엘은 미스바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집결시켜 신앙적 변화를 꾀하는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을 사무엘이 다스리기는 하였으나 외부적,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온전한 평온을 얻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백성들은 다른 나라들과 같이 왕정체제를 요청하였습니다. 사실 그들의 그런 불안 요소들의 진정한 원인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못한 것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왕을 통해 다스리는 왕정체제만을 요구하였고,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되어진 사람이 바로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의 뜻은 고생이나 재난을 자초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과 같이 그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이름을 가진 사울을 소개할 때 먼저 그는 베냐민 지파 기스 가문의 유력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이는 지파간 전쟁으로 베냐민 지파의 남자가 600명만 남게 되는 상황에서 가장 약한 지파의 출신이었다는 것, 그리고 600명이 베냐민 지파의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유력한 가정의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는 그러한 가정적 배경으로 인해 강력한 군사력과 용맹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준수하고 건장한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덩치도 좋고 키고 큰 사람, 그리고 잘 생겼다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울은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으러 갈 때 한 명의 사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또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을 만났을 때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 이야기 하자 그는 자기처럼 연약한 사람이 왕이 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사환의 조언을 들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는 일에 있어서도 그가 즉각적으로 움직여 하나님의 사람을 간절히 찾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잠언서 817절에 나오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람을 간절히 찾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사울의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는 이제 그런 모습 속에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사무엘로부터 기름을 부음을 받게 됩니다. 기름 부음 받은 후 그는 놀라운 사람이 됩니다. 기름부음이라고 하는 것은 왕이 된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함께 그 왕의 직무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받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지금 왕의 자리와 왕이 가지는 능력까지 모두 부여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이러한 모습과 같이 하나님의 영, 곧 성령에 붙들려 지게 될 때 받은 직분, 책임도 다 감당할 수 있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이렇게 성령에 붙들려지는 가운데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새 마음을 품고 예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붙들리게 되니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는 일도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왕으로 등극하게 되어졌을 때 사울은 암몬 사람 나하스를 물리치는 일들을 하게 되면서 위상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지게 되어지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런 삶이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변질되었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사무엘이 7일을 기다리라는 말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불안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전통과 질서를 어기고 그냥 자신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버렸습니다. 사무엘은 이런 사울에게 망령되이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망령되이 행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의 이끌려 행동하는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라 악령, 사탄에게 이끌려 행동하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어 살아가는 것은 예배적인 삶, 기도하는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데 사울은 이것을 유지하지 못하였고 결국 어리섞은 모습을 취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으나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있지 않게 되자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있습니다. 1519절에 보면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라고 사무엘에게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은 아각과 아말렉 사람들 모두를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하였으나 사울은 그 명령을 알고도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악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형식적인 자세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고 경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음의 진정성 없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울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있을 때는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청하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의 불손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614절에 말씀에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붙들려 있지 아니하니 그는 세상과 쾌락과 죄에, 그리고 사람에게 붙잡혀진 가운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번뇌하게 되어졌습니다. 악령은 사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탄에게 사로잡히게 되어져서 번뇌가 생겼고 이로 인해 그는 공포감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있으면 용맹하게 전쟁을 치루었지만 성령이 아니라 사탄에 사로잡히니까 공포감과 불안감 가운데 고통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이제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자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악한 마음까지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게 되면 이렇게 시기, 질투, 미움만 남게 되고, 옳은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결국 이런 사울의 모습은 마지막 비참하게 자살을 하게 됩니다. 어찌 할례 받지 못한 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겠느냐 하면서 자살을 택합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라고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무엇에 붙잡혀 사느냐 하는 것이 삶의 인생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에 붙잡혀 살고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있을 때 우리는 승리의 삶, 은혜로운 삶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도 연약하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허물과 실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회개하고 죄들을 깨닫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자는 하나님께 매달릴 줄 압니다. 눈물 흘리게 됩니다. 잘못했다고 매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렇지 아니하고 사탄에게 붙잡힘으로 결국 끝끝내 비참한 최후가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곧 우리는 무엇에 붙잡혀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오직 하나님께만 붙들려 살아감으로 행복한 삶으로 그리고 회복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