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유한한 인생을 삽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자세가 있어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일에 더욱 힘쓰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천국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마땅한 성도의 길을 온전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물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돌아오기 힘든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낮추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은 낮아지심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영광이 따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지 못하고 곁길로 빠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낮추셔서 돌이키십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가 순종하는 자, 겸허한 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이 더욱 깊은 성도가 되어 현실을 살아가면서 어려울 때도 주님 말씀 붙들며 천국을 바라보며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를 볼 때 낮아짐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시험이라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유혹, 미혹입니다. 또는 신앙 인격을 성장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시험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시련에 해당합니다. 이 말씀은 로마 황제가 이스라엘을 박해하는 배경 가운데서 주어진 것입니다. 당시 흩어져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핍박과 박해 가운데 위축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오히려 믿음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삶이 낮아짐입니다. 당시 성도는 이런 낮아짐 가운데서도 주님으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낮아지면 반드시 이후에 영광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한 것입니다. 이러한 낮아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고, 죄인 대신 죄인의 형상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진정한 낮아지심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도 어렵고 힘든 시련을 만났을 때 믿음을 지키지 못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나는 주의 것이라는 고백을 가진 자는 믿음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은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야고보는 몇 가지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험을 당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며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시험이 있지만 신앙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시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게 됩니다. 이 모든 시련은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기 위한 도구임을 알게 됩니다. 야고보는 이 모든 시험은 우리로 더 강한 성도가 되도록 허락하신 것이니 기뻐하며 인내하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시험이 다가올 때 성도에게 권면을 한다면 대비책을 강구할 법도 한데 야고보는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지혜가 있어야 고난 가운데서도 악에게 미혹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우리가 고난을 만날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똑바로 보고 고난을 피할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시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성도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이 아닌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성도는 이 지혜를 통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어떻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기도를 통해 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우리는 시련을 이기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의심하지 말고 구하라고 합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은 한 마음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험으로 우리를 낮추심도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주님만 바라며 의지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 길로 가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과 우리의 자녀들이 지혜가 필요함을 알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낮은 형제는 본래 겸손한 성도를 의미합니다. 오늘 문맥에서는 시험을 만난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권면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피난을 가야하고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우리를 높여주실 것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자랑하라는 것은 지금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셨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이기에 반드시 이후에 높아질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높아짐을 온전히 기대하는 태도입니다. 당시 성도는 하나님 밖에는 없었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만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낮추심으로 이렇게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높아질 것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이 땅에서 만나는 시험이 있더라도 절대적인 믿음을 갖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혜를 구하며 주께서 높여주실 것을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오늘을 이겨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번째는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다보면 아무래도 신앙에서 떠나게 됩니다. 한국교회 역사도 보면 어려웠을 때는 늘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소망하고, 늘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함께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살기 좋아졌을 때 예전과도 같은 신앙이 점점 없어집니다. 부하게 되면 아무래도 신앙의 열심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낮아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도록 더 강한 믿음을 가진 자로 만드시기 위해 시련을 주십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여러분, 이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집착하면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도의 가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주십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진정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이요, 부활 소망을 가지며 천국에서 살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치를 가진 자는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결국 낮아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면서 온갖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여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뜻대로 살면서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을 기대하며 이 땅을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