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왜 착각입니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규칙에만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화 있을진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말은 다 잘 지키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말만 잘하지 행위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선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위선자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신앙의 원리를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는데 앞장서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의 원리를 알려줍니다. 추수의 원리가 곧 신앙의 원리인데 우리 또한 이를 깨닫지 못하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위로할지는 몰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는 게으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심고 거두는 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은 신앙의 원리가 아닙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추수의 원리입니다. 이제 자연세계에서도 추수의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 자연세계에서도 농부가 씨를 뿌리고 마음을 다해 인내하며 여러 역경을 헤쳐 나왔을 때 비로소 추수의 때를 만나게 됩니다. 풍성한 결실은 그만큼 땀을 흘리고, 힘을 다해 수고할 때 주어집니다. 이러한 자연세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 속에 있습니다. 즉 자연세계와 마찬가지로 신앙도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반응할 때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를 7절에서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셔서 형식만 있는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여러 차례 껍데기만 있는 가증스러운 것들(거짓된 것들)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받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받으셔야 하는 분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로 볼 때 우리가 주님께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드릴 때 주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존귀하게 여길 때 주님께서도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때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받기를 바라고, 우리는 하나님께 조금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복으로 채워주시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행위이고, 신앙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8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로 볼 때 인생은 2종류뿐입니다. 하나는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인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령을 위해 심는 인생입니다. 여기서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다는 것은 자기 정욕에 따라 행한다는 뜻입니다. 썩어질 육체를 위해 자기 옛 본성에 따라 심으니 자연스럽게 썩어질 것이 열매 맺습니다. 반대로 성령을 위해 심는다는 것은 성령에 이끌려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주의할 것은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은 자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면서 성령 안에서 전도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헌금하고, 선한 행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이 어떤지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자기 육체를 위해 살았는가?,’ 아니면 성령을 위해 살았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 중에 야곱이 있습니다. 야곱은 오늘 본문에 의해 살펴보면 속이는 자입니다.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물론 야곱은 우리의 믿음의 선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원리, 추수의 원리는 야곱의 인생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도 열매를 위해 결실을 위해 힘을 다해 심어야 합니다. 거둘 때가 있음을 기억하며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는 자에게 요구하시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인내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선은 뿌리는 것이고, 인내하며 추수의 때를 기다려야 함을 알려줍니다. 디도서 2:14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로 볼 때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가져야 할 태도는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한 얼마나 오래 참아주셨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가 어떠합니까! 기억하셔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귀한 열매가 주어집니다. 그 열매를 생각하며 성령으로 심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살다보면 악인이 더 형통한 것 같고, 어려운 일들이 가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10절 말씀을 의역하면 이렇습니다. 특히 우리는 모든 시간 속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기에는 믿지 않는 자들도 포함되지만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기회가 있는 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가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끼리는 초대교회가 행했던 유무상통, 즉 구제를 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누구에게라도 선한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에 인내를 가지고 열매를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